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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6-25 19:52 (토) 기사제보 구독신청
‘육아 대통령’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육아 대통령’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22.04.01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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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 나쁜 부모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인사이트코리아=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우리 안에 억울함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원인도 참 다양해요. 그런데 이 억울함은 열심히 산 사람이 더 많이 느낍니다.”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은 정신과 의사로서 억울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열심히 살거든요.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는데 입시를 치르고 나면 억울한 마음이 들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잘 지킨 자영업자들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억울함의 뿌리인 분노의 감정이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고 다시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게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전 사회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육아 대통령’으로 불리는 오 원장은 소아청소년정신과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명함엔 저술가라고도 적혀 있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의 화해> 등 그동안 16권의 책을 냈다.

그는 연세대 의대, 고려대 의대 정신의학과 박사, 아주대 의대 정신과 교수를 지냈다. 아주대 의대 전임강사 시절인 1996~1998년 경기도와 오산시가 50 대 50 매칭펀드로 시작한 어린이정신건강사업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30대 초였다. “그 시절 오산은 허허벌판이었는데 어느 집 아이가 굶는다더라, 울고 있다더라 하면 곧바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빨간 바지 차림으로.”

그는 그런 활동의 기반이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실이었다고 했다. “연대 의대엔 세브란스 정신이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교실은 환자 인권을 중시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똘똘하게 잘 컸다”

1965년생인 그는 32주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1900g이었다고 한다. 생존이 불확실해 보였던 그는 그러나 주변의 우려와 달리 ‘똘똘하게 잘 컸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고 두 돌 때까지 매일 밤 울었답니다. 아마 너무 일찍 태어나 배가 아팠던 거 같아요. 자라면서도 잘 안 먹고 편식이 심했습니다. 말썽을 부리거나 대들지는 않았지만 ‘네’ 하는 법이 별로 없었어요. 걸핏하면 ‘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하죠?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라고 했죠. 저희 어머니는 감당이 안 되는 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습니다. 이 편식쟁이를 정성껏 먹여 지금은 제가 먹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를 잘 이해하겠어요?

“너무 잘 이해가 되죠. 아버지는 저와 기질도, 성격도 비슷하셨어요.”

올해 아흔 둘인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와 오빠를 앉혀 놓고 아버지는 “혹시 건강을 회복 못하더라도 너희 대학 등록금은 마련해 뒀으니 동요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는 제 방에 들어가 울면서 기도했다.

“아버지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면 열심히 공부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현세에서 구복을 하면 안 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들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저도 모태신앙인입니다. 신앙 활동은 열심히 안 하지만.”

오 원장은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시사교양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2013년엔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을 탔다.

방송인으로서의 재능도 타고났습니까?

“학식과 경험을 갖추신 분도 있고 친근하게 말 잘하는 분도 있지만 둘 다 갖춘 사람은 드문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재능이 조금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이에겐 가장 중요한 사람인 그냥 부모일 뿐이죠. 아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도와 해결하도록, 아이를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 성찰하고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지 고민해야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내면도 키워줘야 해요. 아이는 언제나 가르침의 대상입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내면을 잘 파악해 가르쳐야죠. 혼내고 아이와 싸우는 건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가장 좋은 부모는 사랑해 주는 부모죠. 아이 입장에서 내가 공감과 이해를 받고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주는 부모. 내자식을 선택할 순 없지만 육아방식은 선택 가능합니다. 아이가 좀 크면, 의논 할 수 있는 부모가 돼야합니다.”

암 투병하면서 인생의 변곡점 맞아

오 원장은 2008년 암 수술을 받았다. 회복이 빨라 2주 만에 진료실로 돌아왔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타인들에 대해 원망스러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늘 그랬지만, 환자 및 가족들이 저한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진단서 써주세요.편지 써주세요. 왜 안 낫는 거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던 일인데 그 땐 마음이 힘들었고 ‘이러니 내가 암에 걸렸지’하는 생각 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환자 보호자들이 손이 많이 가는 반찬과 배즙을 만들어 오고, 제가 좋아한다고 기장미역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한 자폐아의 엄마는 저를 안아주면서 ‘얼른 나으라’고 하셨죠.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보통은 제가 안아 드렸는데…”

암 투병은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과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던 시절 아이의 문제점을 고쳐주려 했다면 요즘은 아이를, 증상이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전인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단적으로 의사가 아무래도 증상에 초점을 맞춘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약의 부작용에 더 신경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두 개의 유튜브를 한다. ‘오은영의 버킷리스트’는 암 투병 후 시작했다.

“얼마 못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추스르고 나니 해보고 싶은 게 많더라고요.”

그는 잘해야 한다는 비장함과 부담감 없이 편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잘 못하면어때요? 직접 해봤다는 경험 그 자체가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버킷리스트를 소개해 주시죠.

“7시간 연습해 시도하는 ‘백조의 호수’ 1분 공연, 차차차 댄스, 강아지 훈련, 요리·빵·노래에 대한 도전 등입니다. 강아지 훈련을 시키다 엎어졌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는 “(연식이 좀 된) 오 박사님도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저도 해 봐야겠어요” 같은 구독자 댓글도 달린다고 귀띔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그는 보통 새벽에 집을 나서 밤 늦 게 귀가한다.

워크홀릭이시군요?

“아닙니다. 워크홀릭은 일을 안 하면 불안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하는 일들은 제가 좋아서 합니다.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싶은 일들이에요. 다행히 그 좋은 일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일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저는 쉬는 것도 너무 좋아합니다. 쉴 땐 그야말로 늘어지게 쉬기도 해요.”

“적어도 치사하게는 살지 말자고 늘 다짐”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언제나 꿈을 꾸라고 하고 싶습니다. 직업은 꿈이 아니에요. 직업적으로는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건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자기 파악을 해야 합니다. 아침잠이 많으면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을 고르지 말아야죠. 이건 게으르고 게으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또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은 피해야죠.”

그 길에서 밟아야 하는 과정, 치러야 하는 비용은 기꺼이 감수하라고 그는 조언했다.

“저의 경우 의대 6년보다 인턴·레지던트 5년이 더 힘들었어요. 누가 다시 하라고 하면 싫다고 할 거 같아요. 그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 제 역할을 해내는 겁니다.”

‘덕업일치’(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말이죠. 그런데 아무리 좋은 슬로건이라도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보다 한 발 물러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좋습니다. 저를 포함해 누구나 미숙하고 어리석습니다. 나쁜 면도 있어요. 그러나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들고서 우리가 ‘와아 싱싱하네’ 하듯이, 덜 영근 작은 포도알, 껍질이 까진 알을 볼 게 아니라 포도송이를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오 원장님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 조언을 주신다면…

“내 자식이 아니라도, 약자인 아이들의 권리를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면 ‘쟤 왜 저래’하기보다 ‘무슨 어려움이 있나 보네’ 하는 마음이죠.”

누구나 이른바 원가족 문제를 겪는 거 같습니다. 가족이란 대체 뭘까요?

“우리 존재의 기본이죠. 관계가 좋을 때 가족은 편안함과 위로를 주지만 나쁘거나 어려울 땐 정말 이런 굴레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원가족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을 선택하는 게 가능해져야 가족관계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가족, 가족이 가하는 자극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방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좌우명은 뭔가요? 요즘 말로 인생 문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 좋은 결과를 내면 더 좋겠지만 해결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열심히 살려 합니다. 말하자면, 편안함을 유지하는 최선이죠.”

그는 정의롭지 않은 일엔 목소리를 내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성직자처럼 살 순 없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국가·사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이죠. 그래서 때로는 나서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려 합니다. 적어도 치사하게는 살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만 꼽아주시죠.

“첫째, 화 안 내는 사람.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이 함께 있으면 안정이 된다고 해요. 둘째, 굉장히 씩씩합니다. 뭘 하든 열심히 하고 잘 안 지치죠. 셋째, 밥 잘 사주는 사람. 친구·동료·후배들에게 밥을 잘 삽니다.”

밥을 사면 ‘약발’이 있습니까?

“그럼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정도 들고 배가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죠. 그래서 밥을 삽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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