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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5-18 19:59 (수) 기사제보 구독신청
홍보맨과 기자, 가상세계서 ‘밀당’ 한다
홍보맨과 기자, 가상세계서 ‘밀당’ 한다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1.12.01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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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부터 이메일, 카카오톡, 메타버스까지 보도자료 변천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메타버스 세계에 대기업, 금융기관, 공공기관이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며칠전 퇴근 길에 목격한 일이다. 집 근처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십 여명 정도 빙 둘러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호기심에 들여다 보았더니 지긋한 연세의 할아버지가 익숙한 행동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달고나’ 였다. 얼마 전에는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이 설탕과자가 꽤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는 뉴스도 본 듯 하다. 필자의 유년 시절에는 ‘찍어먹기’ 또는 ‘뽑기’라고 불리던 이것이 새삼 지금에 와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오징어 게임’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든 시리즈물 드라마로 전 세계 190개국 2억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Netflix)의 역사상 최대 히트작이라 한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던 시절 그리고 방과 후 학원도 거의 없던 시절, 그 옛날에는 골목길마다 비포장 흙땅 위에서 갖가지 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붐볐다. 그중에서 ‘달고나’는 놀이는 아니었고 돈 주고 사먹는 군것질거리였다. 녹인 설탕에 소다를 섞어 만든 과자 위에 그려진 모형대로 잘라내면 덤으로 하나 더 주는 방식이었다.

아이는 온 신경을 집중해 옷 핀으로 콕콕 찍어서 정성을 다해 잘라낸다. 실패하면 그냥 먹고 어렵게 성공하면 달고나 아저씨가 공짜로 하나 더 만들어 준다.(드라마에선 성공하면 돈이고 실패하면 죽음이지만) ‘달고나’ 장사 아저씨와 손님 아이가 벌이는 일종의 즉석 뽑기 게임 방식이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멀쩡한 국자를 태워 먹어 어머니에게 혼이 난 기억도 난다. 하여튼 ‘달고나’와 ‘오징어 게임’은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가 혼재된 모습이었다.

한편 지난 10월 말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창업한 지 17년 만에 회사명을 메타(Meta)로 변경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는 메타버스(Metaverse)를 ‘새로운 미래’라고 지칭하며 앞으로 모바일이 인터넷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인터넷 플랫폼으로 주목 받는 메타버스 세계를 선점해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이다.

‘메타뉴스’의 출현

메타버스는 ‘초월, 그 이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와 ‘세상 또는 우주’라는 뜻인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이 말을 처음 만든 미국의 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아바타’라는 용어를 사용해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3D 가상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명명했다.

최근 이러한 메타버스 세계에 대기업, 금융기관, 공공기관이 잇달아 진출하고 있고 드디어 ‘메타뉴스(Meta News)’라고 하는 언론사도 등장했다. 이른바 메타뉴스의 아바타 기자들이 미디어센터 내 공간에서 취재 회의를 한 후 메타버스 각 공간을 누비며 기사를 발굴하고 인터넷 뉴스로 실시간 보도하게 된다. 독자들은 메타뉴스 미디어센터 내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며 다양한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기업의 홍보맨들도 아바타로 변신해 메타버스 공간에 들어가 언론사 기자 아바타를 만나고 직접 보도자료를 전달하거나 기자의 취재 문의에 응답하는 일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국내 대기업에서 홍보실을 만들기 시작하고 최초로 기업 홍보맨들이 등장하게 된 시절에는 감히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은 홍보실에서 기자들에게 자료를 보낼 때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별 어려움 없이 보내고 있다. 용량이 큰 사진과 동영상도 외부 저장장치를 이용하면 역시 오케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기업 홍보실 초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오늘은 언론사 기자와 대기업 홍보맨 사이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사무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수화기 저편으로 들리는 화가 단단히 난 목소리. “아니, 팩스로 보도자료를 보내다니! 이거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오?” 팩시밀리라는 기계가 발명되고 드디어 홍보실에도 보급된 시점이니 아마 1980년대 중반이라고 추정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할 때는 먼저 타이프라이터로 문안을 정성껏 작성한 후(오자, 탈자, 혹은 수정할 사항이 발생하면 처음부터 다시 타이핑해야 했다) 전달해야 할 언론사 수효만큼 복사한다. 그리고 나서 그 자료를 회사 로고가 박힌 편지봉투에 넣은 후 봉투겉면에 언론사와 출입기자의 이름을 일일이 써 넣고 풀을 붙인다.

모든 준비를 마치면 조간과 석간, 그리고 광화문 지역과 기타지역 등 구역을 나눠 직원 두 명이 회사 빌딩 앞에 미리 대기중인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 두 대로 출동을 한다.(주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언론사 주차경비원의 양해를 구하고 시동을 켜놓은 채 직원 한 명이 잽싸게 출입기자에게 전달하고 돌아와야 한다) 당시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언론사는 교통체증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타 언론사에 비해 늦게 보도자료가 전달되어 애를 먹이기도 했다.(그래서 전달 시간이 다른 점을 감안해 일부 신문 출입기자에게는 먼저 전화로 보도자료 내용을 불러주기도 했다)

일상적인 보도자료 전달에만 거의 한나절이 걸리는 셈이었다. 그러던 시절이니, 팩스라는 신기한 기계가 보급되자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와 언론사를 오가며 퀵서비스(?) 일을 해오던 홍보실 말단 직원들은 ‘동봉 사진자료만 없다면 이제 언론사로 직접 갈 필요가 없어졌구나’ 하며 모두들 좋아 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유감스럽게도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직접 전달하는 업무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왜냐하면 ‘사람 얼굴을 대하며 자료를 받아보다가 기계를 통해 받게 되니 인간미가 떨어지고 성의도 없어 보인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서류를 스캔 촬영해 곧바로 전송하는 등 사무실에서조차 팩시밀리의 사용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이 또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휴대폰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유용되었던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페이저)도 마찬가지다. 당초 긴급연락을 필요로 하는 병원 의사들이 차고 다니던 고가(?)의 연락장비가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보급되었고, 곧 이어 대기업 홍보맨들도 하나 둘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었다.(당시 회사에서 삐삐를 지급 받은 임직원 수효가 손꼽을 정도였으니, 족쇄인 줄도 모르고 타 부서 입사동기들에게 괜히 으쓱해 하던 홍보맨도 있었다)

그런데 이 무선호출기는 지하층이나, 창문이 없는 방에서는 수신이 잘 안 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실에서 수신이 잘 안 될 경우, 그 출입처 가기를 꺼려하는 기자들도 초기에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음지가 양지가 된다’고 그 기자실이 인기를 더해 가는 것이 아닌가. 전날 과도한 술과의 전투(?)로 인해 데스크의 취재 지시를 잠시 피하고 싶은 경우, 아니면 마감 시간에 쫓겨 촌각을 아끼며 집중해서 기사 작성을 해야 할 경우, ‘아! OO회사 기자실에 있었는데, 그래서 삐삐가 안 울렸나 봅니다’라고 답변하면 훌륭한 핑계가 되곤 했다.(이를 간파해 홍보실로 직접 전화해 출입기자를 찾는 데스크도 물론 있었다. 이 경우, 홍보실 직원들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오늘날 스마트폰 세대의 젊은 기자들이나 홍보맨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가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후반.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고, 자기 승용차로 이동하는 기자들도 많아져서 휴대하기가 편리해 졌지만, 당시에는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이곳저곳 이동하기란 매우 고역이던 시절이었다. 특히 더운 여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무거운 컴퓨터 가방을 둘러메고 다니기에는 더욱 그랬으리라.

하루는 연배가 비슷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모 경제신문의 K 출입기자가 기자실을 방문했다. “문 팀장, 다음 주부터 우리 회사도 노트북인가 뭔가가 지급된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처사야. 젊은 기자들은 좋아들 하는데 나는 영자신이 없어. 난 원고지에 쓰지 않으면 기사가 도무지 써지질 않거든. 난, 아무래도 노트북을 받지 않고 지금처럼 원고지로 기사 송고를 한다고 강력히 요청할 까봐.”

그렇지만 자고로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한 달 후쯤 되었을까, 다시 기자실에서 만난 K기자. 독수리 타법이지만 노트북으로 열심히 기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훌쩍 지난 요즘, 그는 인터넷 언론사를 창간해 대표 자리에 있지만, 기자들과 컴퓨터로 메신저를 하루 종일 주고받는다고 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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