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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9-28 19:12 (수) 기사제보 구독신청
1992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방북기’ 에피소드
1992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방북기’ 에피소드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18.06.04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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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열차가 북경역을 빠져 나와 평양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8년 5월 27일 일요일 저녁.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6월 13일의 지방선거? 6월 14일 시작하는 러시아 월드컵? 둘 다 아니다. 바로 6월 12일 예정되어 있는 북미정상회담이다. 5월 23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99.9% 장담한다고 했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돌연 취소되었다. 이해 당사국인 한국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가 허무함과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이 취소 공개 서한을 이메일로 발송한 후 불과 8시간 만에 북한측에서 응답을 했다. 아직도 두 정상간의 대화를 원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측근 담화문을 통해 미국측에 보낸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즉시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통해 북한과의 회담이 재개될 수 있고 예정했던 대로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개최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그리고 5월 26일 오후. 남북한 2차 정상회담이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전격적으로 열렸다.그리고 백악관에서는 싱가포르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진 30명을 27일 예정대로 현지에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 차량에 올라탄 베테랑 기자

역사적인 2018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28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강 철교위를 경의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동해선, 경의선 철도 연결 등을 합의했다.뉴시스
역사적인 2018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28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강 철교위를 경의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동해선, 경의선 철도 연결 등을 합의했다.<뉴시스>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마치 어린아이가 담장 위를 걷는 듯, 곡예사가 긴 장대에 의존해 밧줄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하다. <인사이트코리아 6월호>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6월 초에는 이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현재로서는 예측불허, 그야말로 오리무중 안개 속이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26년 전인 1992년에도 전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북한 관련 뉴스가 있었다. 정부 인사나 정치인이 아닌 민간 경제인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위해 김정은의 친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만나고 온 일이다. 당시 한동안 국내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그야말로 빅 뉴스 감이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에피소드는 1992년 1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일행이 평양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언론사들의 기사 경쟁으로 빚어진 해프닝이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10일간의 방북을 마치고 26일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측과 남포경공업 9개 분야 합작공장 설립, 석탄 등 북한 내 지하자원 공동개발, 제3국 공장 공동건설 등 해외건설 사업 등 남북간 협력사업 3개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1992년 1월 27일 어느 조간신문 1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분이다. 이날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신문이 하나 있었다. 마치 김 회장이 북한 방문 여행담을 직접 쓴 것처럼 “우리 일행을 태운 특별 열차가 북경역을 빠져 나와 평양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로 시작하는 ‘김우중 회장 방북기(訪北記)’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1월 26일 오전 11시부터 12시 사이에 김포공항에서 벌어진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공항 청사에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대우그룹 홍보실에서는 별도의 기자회견장을 마련하고 배포자료를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기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룹 계열사 홍보실 직원도 총동원됐다. 당시 종합상사 ㈜대우의 홍보과장이던 필자도 당연히 그곳에 있었다.

예고한 대로 김 회장을 비롯해 ㈜대우 사장 등 이번 방북에 동행한 대우그룹 사장단들이 참석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방북 성과 발표, 질문과 응답, 사진 촬영 등 기자회견은 대체로 무난하게 끝났다. 회견을 마치고 김 회장을 비롯한 방북 일행들이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김 회장이 기자들의 끈질긴 추가 질문 공세를 애써 피하며 차에 타려는 순간 모 신문의 고참 기자가 김 회장과 악수를 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김 회장 차량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어, 어’ 하는 사이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난 평양에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갔거든…”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그 기자를 김 회장도 매정하게 내리라고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서울역 대우빌딩으로 가는 길에 신문사가 있으니 가다가 내려 주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이렇게 그 기자와 김 회장 사이에 단독 대화의 기회가 주어졌다. 필자는 “베테랑 기자는 달라도 한참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 결과가 바로 다른 신문은 싣지 못한 ‘김우중 회장의 방북기’다. 그 바쁜 와중에 김 회장이 직접 쓸 리 없었고, 설사 밤 새워 썼다 해도 특정 신문에만 제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내용 이외에 언론사에 알릴 내용이 극도로 제한돼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방북기를 기자가 직접 쓴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김 회장 차량에 동승해 몇 십분 동안 대화를 나눴으니 그 내용이 전혀 터무니 없지는 않으리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이후 몇몇 신문에서도 김우중 회장의 방북기를 게재했다. 기자회견 내용에 기자의 상상을 덧붙여 적당히 짜깁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신문들은 김 회장을 단독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김우중 회장이 아닌 다른 방북 인사의 방북기가 두 개 신문에 실렸다. 한 신문은 상·하 두 편으로, 다른 신문은 상·중·하 세편으로. 이번에 방북기를 발표한 인사는 김 회장과 동행했던 ㈜대우 사장이었다.

첫 회가 나오고 이를 보고 받은 사장은 그야말로 노발대발했다.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대우빌딩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 뒤따라 온 몇몇 출입기자들의 끈질긴 면담 요청을 끝내 거절했던 터라 그 심기는 더욱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북한 방문에 관한 얘기는 공식 발표 이외에 절대 함구를 요청 받아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 어처구니 없게 본인의 이름으로 ‘방북기’가 버젓이 보도되다니. 그것도 두 개 신문에서 한 번도 아니고 2~3회 시리즈로.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본인이 쓰지 않은 본인 이름의 방북기를 찬찬히 읽어 본 사장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 좀 봐. 내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저절로 증명됐군. 난 평양에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갔거든.” 두 신문 모두 “기차를 타고 가다가 철교 밑으로 흐르는 압록강을 내려다 보니 감회가 매우 새로웠다”는 식의 글을 실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언론들은 김 회장 일행이 몇몇 그룹으로 나눠 방북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필자는 그 일로 인해 서먹해진 해당 출입기자 및 언론사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몇 주일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 후 쯤인가 되었다. 방북기가 연재됐던 신문 중 한 신문의 출입기자가 오후에 홍보팀을 방문했다. 그는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필자에게 오더니 흰 봉투를 불쑥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이거 사장님께 전달해 주세요.”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만 원짜리 현찰이 두둑이 들어 있는 돈봉투를 전달하라니. 다름 아닌 사장의 방북기 기고료 22만원이었다. 즉시 사장께 보고를 했다. 본인이 쓰지 않았으니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지 않으면 출입기자가 난처해 질 것이고. 그러자 역시 관록의 사장님은 껄껄 웃으시더니 한 말씀하신다. “문 과장, 이거 가지고 기자와 홍보팀이 같이 저녁이나 하지~” 그날 22만원보다 식사 값이 더 나왔다고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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